黑과 茶의 환상
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지명수배 중인 강도를 발견했거든. 현내 우체국을 세 군데나 턴 녀석이었을 거야. 중상자도 몇 명씩이나 낸 흉악범. 사진은 여기저기 꽤 많이 붙어 있었어. 선명하지도 않고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었지만. 내가 다니던 서예학원 옆이 파출소였거든.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늘 그 파출소에 붙어 있는 그 녀석 포스터를 쳐다보고 있었어.
어느 날, 이유는 잊어버렸지만 엄마랑 역에 갔었거든. 아마 먼 데서 오는 친척을 마중 나갔을 거야. 엄마는 작은 어머니랑 이야기 하고 있고, 나는 대합실을 돌아다니고 있었어. 그런데 대합실을 둘러보는데 왜 그런지 자꾸 마음에 걸리는 남자가 있는 거야. 눈에 띄지 않고, 느낌이 온화한 남자였거든. 옷차림도 단정하고. 책을 읽으면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어. 물론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왠지 너무너무 신경이 쓰여 죽겠더라고. 그래서 나 혼자 안절부절 못했어.
점점 심장이 두근두근 뛰데. 하지만 나도 왜 그런지 그 이유를 모르겠는 거야. 그래서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서성거리는데, 역 구내에도 파출소가 있잖아? 파출소에 붙은 그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어. 그 순간, 저기 앉아 있는 사람이 그 포스터에 나온 사람이구나 하고 번쩍 깨달았어. 서예학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늘 보던 얼굴이구나 하고. 직감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만, 사진에 있는 그 사람이 저기 있구나 하고 안 거야. 자신은 있었지만, 그래도 한동안 파출소 앞을 왔다 갔다 하기만 했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엄마한테 말할까, 아니면 경찰한테 말할까 망설이면서. 경찰한테 말을 붙인다는 게 당시의 나한테는 엄청난 모험이었으니까. 그런데 절박한 얼굴로 왔다 갔다 하는 나한테 경찰이 먼저 말을 걸었어. 미아인 줄 알았나 봐. 그래서 용기를 내서 말했지. 저기 저 포스터에 나온 사람이 저쪽에 앉아 있다고.
처음에는 경찰도 반신반의했어. 젊은 경찰관이었는데, 어리둥절해하더라고. 지명수배 중인 범인이 이런 데 태평하게 앉아 있으리라고는 생각 안 하잖아. 경찰에서는 줄곧 간사이 쪽으로 도망가지 않았을까 생각한 모양이야. 다들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난처했나 봐. 하지만 내가 너무나 확고하게 주장하니까 안에 있던 나이 든 경찰관이 나왔어.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새고 몸집이 다부진 아저씨였는데, 나를 보면서 정중하게 묻더라고. '얘야, 어떻게 포스터에 나온 그 사람인 줄 알았지? 저기 앉아 있는 사람은 선글라스도 마스크도 안 했잖아?'하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대답했거든. '귀가 똑같이 생겼어요.' 하고.
그 순간은 선명하게 기억이 나. 내가 그렇게 말하니까 그 경찰이 안색이 확 달라지더라고. 나중에 알았지만, 성형수술로 얼굴을 바꾸는 범죄자는 많지만 귀까지 바꾸는 사람은 별로 없대. 하지만 귀는 의외로 특징이 있기 때문에 프로는 귀를 보고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한다는 거야. 포스터 사진은 얼굴은 가려져 있었지만 왼쪽 귀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었거든. 모양이 좀 이상한 귀였어. 만화에 나오는 등장인물처럼 숫자 3이랑 비슷한 모양인 게. 그때부터 갑자기 파출소가 부산스러워지고 경찰이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댔어. 지원을 요청한 거겠지. 그러더니 금세 경찰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타나데. 그걸 보고 남자가 은근슬쩍 역에서 나가려고 하다가 순식간에 포위돼서 붙잡혔어. 역 안이 한동안 시끌벅적해졌지.
붙잡힌 걸 보고 나서 나는 얼른 엄마 있는 데로 돌아갔어. 엄마는 마침 친척이 도착해서 이야기에 푹 빠져 있느라고 내가 파출소에 간 것도 전혀 모르더라고. '어머, 뭐지, 어수선하네.' 하고 태평하데. 그래서 나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엄마를 따라가고 그걸로 끝.
흑과 다의 환상 下, 온다 리쿠, p.4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