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을 하찮게 생각하는 이들에게서 정이 뚝 떨어졌던 하루. 그런 영향으로, 오늘 타의로 예상과는 달리 약속 시간이 달랑달랑 했을 때, 나는 열심히 뛰었다. 상대도 나처럼 시계만 바라보며 살 것을 생각하면 뛸 수 밖에 없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나는 엉뚱한 건물에 와서 헤매고 있었다. 볼 일을 보고 나와 종로 3가역행을 탔다고 생각했으나 5호선은 한강 다리 건너 목동을 향해 가고 있었다. 반대편 방향으로 다시 갈아타서 종로 3가역 도착, 대화행 열차를 탔다고 생각했으나 고개를 드니 한강을 지나고 있었다. -_-;;;; 결국 압구정 역에 내려 반대편 방향으로 다시 갈아타고 제대로 목적지에 도착했으나 또 반대편으로 가는 몸을 돌려 힘들게 집에 도착했다. 덕분에 지하철에서 읽던 책 반 권을 다 읽고 복습도 해 주시고, 학원 숙제까지도 했다. 푸훗.
없는 돈 쪼개서 사람 만나려 하니 만남도 계획적으로 만나야 하는 실정. 안 그래도 시간 = 돈 이라지만 궁핍함을 계산하며 약속을 짜야 하니 이것도 꽤 예민함을 자극한다. 또 요즘 시간 대비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시간 가는 게 너무도 안타깝다. (올해 들어 여태껏 만남이 절실하여 외로움에 몸부림치다가 이제서야 제대로 돌아왔는지 만남에 목매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보통 때보다는 냉정한 말 한 마디씩 쏘아 박았다. 뭐 상대는 그리 생각 안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이 내가 곤란했다는 것을 알아들을만큼 쏘아 박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화난 건 약속에 늦고 말고, 바람 맞히고 이런 것이 아니다. 왕년에 지각쟁이라는 이력도 있는 사람인데다 급한 일 생기면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한다. 그런데 약속 잡아두고, 날짜가 다 되가도록 아무 소식이 없다. 나는 배려한다고 미리 말한다. 어디에서, 언제 보는 게 편할지 의견을 말해달라고. 그런데 그 대답을 듣기가 힘들다. 자기가 정하기 곤란하거나 아무래도 좋으면 그렇다고 말을 하든가. 이런 일은 특정 한 사람에게 해당하지는 않는다. 쌓이고 쌓였다.
나는 일요일에 쉬어야 겠다고 토요일에 보자고 했다. 장소와 시간을 편의대로 말해달라고 했다. 베스트라는 친구는 벌써 3,4일이 지나간 질문인데, 언제 답 줄 거냐는 오늘의 내 질문에 미안하다며 내일 안 되겠다고 일요일은 쉰다고 했지? 이렇게 문자를 보내왔다. 그러니까 일요일에 보자는 얘기라고 해석해야 하나? 다른 때 같으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베스트인 친구인만큼 '그럼 토요일에 쉴 테니 일요일에 보자~^^' 라고 말했겠지만 나의 대답은
'일요일엔 쉬어야겠어. 담에 만나자'
과연 다음이란 있을까.
지쳤다. 벌써. 헉..
하루하루 기운을 잃어간다. 회사에 가기 싫어 죽겠는 나날이다. 아무래도 환경적인 요인이 클 것이다. 지금의 환경에 불만을 죽이고 살다가 새로운 몇 사람이 등장한 후로 불만이 증폭된 것일 테다. 내 평화로운 점심 시간이 침범당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시 점심 시간에 뭘 먹으면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윗배가 부어오름은 분명 위염 증상이다. 다음 주부터는 다시 죽을 싸들고 다녀야겠다.
아.. 마음이 작고 좁아져만 간다. -_ㅜ...
학원 4개월 코스는 무난하게 마칠 듯 하다. 가볍게 마지막 진급테스트 통과. 나는 천재인가. 아니면 기초 단계니까 당연한가. 뭔가를 해내고 있는 게 오랜만이라 나를 추켜세우고 싶구나. 피곤하다 잠을 못 자서. 친구는 괜찮을라나. 나 때문에 체력 소모한 이들 도모 아리가또오고자이마스. 이제는 그렇게까지 피곤하게 하지 않을게요. 흑.. 아침을 기분 좋게 시작해도 찌뿌둥한 것이 괴롭구나.
나를 위해 병원 간다. 가기 싫지만 안 가면 안되니까. 안되니까. 아 가기 싫어 . ㅜ_ㅜ.
앞에 가던 여자가 이상한 꼴로 넘어진다. '1리터의 눈물' 주인공마냥. 무슨 병인가?
나도 무슨 병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사람 많은 길 한복판에서 넘어져 바지가 약간이지만 입고 다닐 수는 없는 정도로 튿어졌다. 무릎은 하루가 지나도 아프다.
정신 좀 차리자.. 정신 놓고 다닌 결과... 렌즈 찢어지고 바지 찢어지고 신발도 관리 제대로 못하고... 렌즈 바지 합쳐 한달만에 15만원 가량을 그냥 버리게 생겼구나. -_ㅜ.... 이젠 그냥 싼 거나 사련다. 가슴이 미어진다.
가던 길 잘 가다가 방향을 갑자기 바꾸는 사람을 보면 놀라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나와 아무 상관없이 자기 갈 길을 가는 것뿐이라는 확신이 들어야 안심을 하고. 그 사람이 나와 아무 관계 없다는 확신은 그의 발자국 소리가 내 귀에서 멀어질 때서야 할 수 있다. 이런 습관이 생긴 건 고딩 때 겪은 변태 덕분이다. 휴대폰으로 통화하며 잘 걷던 사람이 통화가 끝나자 방향을 바꿔 내게로 다가와 변태 행각을 벌였다. 당시 충격이 심했다. 분명 통화할 때는 정상인이었으니까. 또 대낮이기도 했고. 그후로는 갑작스레 걷는 방향을 바꾸는 남자에게 민감하다.
어제, 늦은 시간이지만 걸었다. 집에 일찍 들어가기 아쉬웠다. 이 토요일 밤에 불러낼 동네 친구가 없다니 외롭다. 한 명 있는데 전화해보니 회사 야유회로 지방에 가있단다. 이런. 집 근처 동네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넘었다. 어떤 사람이 나와 반대방향으로 향해 걷다가 나를 보고는 방향을 바꿔 내가 가는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앞서 썼듯 내가 그런 것에 민감하기에 발자국 소리를 향한 긴장을 풀지 않았다. 이 사람이 나와 상관이 없이 걷고 있는 거라면 어느 순간엔 발자국 소리가 나에게서 멀어져야 하는데 오랜 시간 나와의 거리가 일정하다. 원래 걷던 골목길로 들어서지 않고 계속 밝은 길을 걷다가 동네 지구대가 있는 쪽으로 갔다. 지구대를 지나 아직도 불이 켜져 환한 슈퍼마켓 앞에서 뒤를 돌아 집에 전화했다.
'엄마, 심상치 않아. 좀 와줘. 경찰서에 있을게.'
그 사람은 나를 쫓아오지 않은 척 내 옆을 지나 슈퍼마켓도 지나쳤다. 그 사람이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자기 갈 길을 갔어야 했는데, 뒤돌아서 확인하니 그가 나를 살피는 듯 서있었고, 나와 마주치자 엉뚱한 골목으로 방향을 갑자기 바꾸는 게 보였다. 나는 지구대 쪽으로 다시 되돌아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또 내 뒤에 있었다. 이번에도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엉뚱한 골목길로 방향을 틀었다.
경험상 그가 상대녀가 놀라는 표정을 지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가벼운 변태'라면 지나온 길이 비록 밝고 지나는 차량이 많았던 길가라고 해도 걸어오는 동안 주변에 걷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미 변태 행각을 보여주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 새벽에 오랜 시간 아무런 제스쳐 없이 무작정 나를 따라왔다면 이건 '작정했다'는 뜻 아닌가. 길 걷다가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나를 표적으로 삼았다는 것은 '성범죄'를 생각해뒀을 것이 분명하다. 어린 여자가 돈이 있어야 얼마나 있다고. 돈 많은 동네도 아니거니와. 나는 아예 지구대에 들어가 상황을 설명하고 어머니를 기다려 같이 집으로 갔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으니 그 놈을 잡았더라도 엄한 사람한테 이런다 잡아때면 할 말이 없어 그 사람 누구냐는 경찰관의 말에 도망갔을 거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확실히 고딩 시절 순진한 변태를 반복적으로 상대한 효과가 있는가? 이런 식으로 어두운 밤, 집 앞까지 쫓아온 것도 모자라 바로 내 눈 앞으로 다가왔던 변태가 있었다. 나를 따라온 게 아닌 척하며 자꾸 엉뚱한 골목으로 들어가던.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밤, 화를 면할 수 있었다니 아이러니하다. 나는 이제 밤길을 혼자서는 절대 걷지 않기로 했다. 굉장히 불쾌하다. 좋아하는 밤길 산책도 못한다 생각하니 분하다. 역시 세상은 남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불쾌하다. 무섭기보다 짜증부터 인다.